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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질감의 한지로 가을 풍경을 빚어내다 Chon byung hyun Newspaper article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10-09-26 21:12 | 최종수정 2010-09-26 21:42  0

전병현 개인전 'Blossom'

나무·들판·오솔길 캔버스에 펼쳐내

동양적 정서 가득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화가 전병현(53)씨의 개인전 'Blossom(만개)'. 1층 전시장에 걸린 '오솔길' 연작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고요한 가을 숲 속을 혼자서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발 밑에서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노란 빛, 붉은 빛의 캔버스 위에 성큼 다가온 가을이 가득하다.

전씨는 닥종이를 물에 개어 죽처럼 만든 한지죽을 재료로 한, 독특한 질감의 입체적 한지 부조 그림으로 알려진 작가다. 3년 전 개인전에서 백자항아리에 가득 꽂힌 꽃 등 정물화를 선보였던 그가 이번에는 풍경화를 들고 나왔다. 광릉 수목원의 자작나무숲과 지리산의 달궁계곡, 전남 강진군의 마량포구 등을 찾아다니며 보았던 나무와 들판, 오솔길, 꽃의 모습을 화면 가득 펼쳐냈다.

그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울퉁불퉁한 덩어리들의 조합이다. 두터운 마티에르에서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사실 그 속은 텅 비어있다. 제작 과정은 이렇다. 꽃이나 나무 등 그림에 등장하는 각종 형태를 흙으로 빚은 뒤 석고를 부어 틀을 만든다. 그 틀 안에 한지죽을 넣어 말린 뒤 석고를 뜯어내 만든 한지 부조를 캔버스에 찢어붙이고, 황토와 돌가루를 입힌다. 그 위에 먹, 안료 등으로 채색을 하고 목탄 드로잉을 더하면 그만의 한지 부조 그림이 완성된다. 작품 한 점을 제작하는 데 6개월의 시간이 걸릴 만큼 끈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전씨는 "한지로 만든 작품이라 약할 것 같지만 바닥에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우리 종이는 세계 어떤 재료보다 질기고 뛰어나다"고 말했다.

전통 한지에 자연의 재료로 자연을 그렸기 때문일까, 빨랑 노랑 초록 같은 현란한 색깔도 혼자 도드라지지 않고 은은하게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솜털 같은 흰 꽃을 주렁주렁 매단 나무 한 그루로 황토 바탕을 가득 채운 '나무' 시리즈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재해석한 흑백의 소나무 그림에는 동양적 정서가 가득하다.

그는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오히려 우리의 재료와 기법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한다. "벽화를 공부할 때 외국인 교수가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진을 보여주더라구요. 고분벽화를 재현해보면서 '우리 것이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구나,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의 것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50여 점의 작품이 걸린 이번 전시는 풍경화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2층 전시장의 한쪽은 정물화로 꾸며졌다. 색을 다양하게 활용해 계절감을 뚜렷하게 표현한 풍경화와 달리 정물화는 모두 차분한 흑백 톤이다. 밥그릇이나 꽃병, 항아리 등이 회벽에 박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정물화는 서양식 정물화와 달리 전통 민화처럼 다시점을 사용한 구도로 한결 자유롭고 편안하다.

전씨는 최근 미술시장에서 인기작가로 꼽힌다. 그는 "쉰 살이 되기 전까지 25년간 작품 한 점 제대로 팔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계속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며 기다렸다"며 "앞으로도 똑같은 것만 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 계속되며, 10월 2일 오후 3시에는 전씨가 관람객들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해주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린다. (02)720-1020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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