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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색으로 말하고 싶다"Chon byung hyun Newspaper article  
Chon byung hyun Newspaper article

"오로지 색으로 말하고 싶다"

미술계 새로운 대항마로 떠오른 전병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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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한국에 들른 한 외국 미술계 관계자가 전병현(53) 작가의 작품을 보고 한마디 했다. “비로소 한국의 색을 보았다”고. 색과 형태는 그림의 기본 구성요소라는 점에서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사실 전병현은 파리 유학시절 한국의 색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된다. “지도교수에게서 고구려 고분벽화가 실크로드를 거쳐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에 이르고, 프랑스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의 선과 색은 저의 화두가 됐습니다.”

◇전병현 작가 특유의 한지부조작업이 보여주는 입체감과 두터운 마티에르는 마치 발길 아래 스치는 풀섶의 바삭거림과 같은 촉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황토와 돌가루 위로 스며 나오는 화사한 색상은 햇빛에 녹아든 천연의 자연색”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려불화의 오방색 쓰임도 고구려 고분벽화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물로 남겨진 도자기 색에서도 우리 고유색의 단서들을 찾아 나갔다.

“고려청자의 옥색은 무덤으로 가져가는 색입니다. 영혼의 색이지요. 조선성리학을 철학적 배경으로 삼는 조선백자의 유백색은 정신세계로 통하는 문을 상징합니다.” 

조선 마지막 유학자 간재 전우 선생의 후손답게 그는 그림에 형식 못지않게 정신(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광릉 수목원과 지리산, 강진의 마량포구 등 작가가 직접 다녀온 곳을 담은 들판이나 숲속의 풍경에 드리워진 오솔길에선 꼿꼿한 선비의 체취가 느껴진다. 눈 속 풍경들에선 추사의 세한도가 연상된다. 민화의 다시점을 연상시키는 정물들은 그림속 기물들이 되레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솔길’
황토와 돌가루에 오방색을 입히는 방식은 고구려 고분벽화 방식 그대로다. 꽃이나 나무 등 원하는 형태를 흙으로 빚고 석고를 부어 틀을 만든다. 그리고 한지죽을 틀에 넣어 물기를 빼면 여러 형태의 한지 조각들이 뻥튀기 과자마냥 만들어진다. 이것을 일일이 손으로 찢어 캔버스에 붙이고 황토와 돌가루를 입힌다. 여기에 다시 먹과 안료로 색을 내고 목탄으로 선을 그리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두터운 마티에르와 입체감이 살아 있는 독특한 그림이 완성된다.

캔버스에 한지조각을 콜라주하듯 붙이는 것은 벽화에서 흙을 마른 짚과 함께 짓이겨 바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천연재료를 사용한 덕분에 마치 캔버스 자체에서 배어나온 듯 은은하면서도 튀지 않는 색은 따뜻하면서도 기운이 느껴진다. 모양 밖에 덧씌워진 빛깔이 아니라 모양 안에 숨은 기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로 그 기운이다.

그동안 한국 미술계는 형이상학적 접근이나 재료학 차원에서 색을 분과적으로 다뤄 왔지만 이를 통합시키지는 못했다. 전병현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다. 조선 도자기에 흠뻑 빠졌던 장욱진이나 이를 광적으로 좋아했던 김환기를 전병현은 가슴으로 이해한다. 특히 김환기는 색조나 색감에 주목한 작가였다. 서양이나 중국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번들거림이나 디자인적인 일본과 다른, 풋풋한 그들만의 유화는 그렇게 탄생됐다. 자신의 책에서 센노 리큐를 직접 언급한 이우환 화백도 어쩌면 조선 도자기의 정신을 읽어냈을 것이다. 그의 ‘조응’ 시리즈는 석도화론의 일획론에 충실한 것일 수 있지만, 모필의 흔적으로 이뤄낸 조선 도자기의 자유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세한도’
“우리는 외국 도자기 명품을 열광적으로 구입하지만 외국인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정작 한국 도자기는 사지 않습니다. 과거의 겉모양을 흉내 내거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정도의 토산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는 전통미술에 내재하는 창조성을 오늘날의 리얼리티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이 한국미술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전병현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오로지 색으로 남고 싶다고 주저없이 말했다. 색을 통해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는 심사다. 단아한 단색조의 조선 가구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했던 에스워스 캘리나 서예(먹)작업에서 영향을 받는 슐라즈 등도 색에 주목했던 작가들이다.

이탈리아의 미술사가 마데오 마랑고니가 “색채는 본질적으로 덜 합리적이기에 형태보다 사람들에게 더 호소력을 가진다”고 했던 말이 떠올려진다. 색채가 감각을 주는 만큼 우리는 그것을 논리적 방식이 아니라 수수께끼처럼 사용할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전병현 작업의 묘미도 거기에 있다. 미술계, 특히 컬렉터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불황기 미술계에 그가 새로운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10월10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초대전. (02)720-1020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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