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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간의 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미디어”Chon byung hyun Newspaper article  
Chon byung hyun Newspaper article

예술은 인간의 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미디어”

[편완식이 만난 사람] 사회과학자 김형국 교수의 '인문학론'

얼마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명예교수와 김종학 화백, 그리고 인사동 통인가게 김완규 대표가 강화도 갯벌장어집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평소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소재로 대화를 즐기는 이들이 모처럼 서울을 벗어난 것이다. 이날은 김 화백의 그림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설악산 화가로 일반에 널리 알려진 김 화백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겨울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에 대해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극찬했다. 대중에 인기 있는 여름그림보다 작가의 심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평창동 전병현 작가의 작업실에서 김형국(70) 교수를 다시 마주했다. 자연스럽게 요즘 그가 펴낸 ‘인문학을 찾아서’(열화당)가 화제가 됐다. 흔히 인문학 하면 그 근간을 문사철(文史哲)로 이야기하는데, 김 교수는 여기에 예(藝)를 더하고 있다. ‘예술감성 고양’을 문사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있는 것이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전병현 작가의 작업실을 찾은 김형국 교수. 그는 “그림의 미덕은 사람의 타고난 자연친화 본성의 경지를 확장해 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자인 구스타프 야누흐가 자신의 아버지 친구인 카프카와 4년간 만나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지요. 야누흐는 카프카와 피카소 전시회를 함께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야누흐가 피카소 그림을 보고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자, 카프카는 그림의 미래가 피카소 그림에 있다고 했지요. 훗날 미술사를 장식할 작가를 알아보는 통찰력을 카프카가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카프카와의 대화’에 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생은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별의 심연처럼 엄청나게 위대하고 오묘해요.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인 실존이라는 작은 구멍을 통해서만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러면 그때 인간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죠. 그 때문에 그 구멍을 무엇보다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해요.'


카프카도 인간 실존의 모습(구멍)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을 예술로 본 모양이다. 김 교수는 “예술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과 꿈의 구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미디어”라며 “특히 그림은 사람의 타고난 자연친화 본성의 경지를 확장해 준 미디어”라고 강조했다.

학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국 유학에서 도시계획학을 공부한 그는 배움을 책에서만 구하려 하지 않았다. 책의 주인공인 사람을 만나거나 현장을 찾았다. 미술관·박물관 발걸음과 함께 작가들도 만났다.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해 있을 때 덕수궁미술관에서 장욱진 화백 전시가 열리고 있었어요. 작품 ‘까치’를 보고 한눈에 반했지요. 장 화백에게 정중히 편지를 썼어요. 1973년 신세계백화점에서 열린 동인전에서 장 화백을 비로소 뵙게 되었지요.”

32세의 김 교수와 57세의 장 화백의 만남이었다. 김 교수가 연세를 묻자 장 화백은 일곱 살이라고 답했다. 이내 장 화백은 “나이는 먹는 것이 아냐, 뱉어 버려야 해. 어린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해”라며 맑게 웃었다.

“장 화백의 그림은 동화적(어린이 그림)이지요. 우리 민화의 특성인 서툰 솜씨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층민, 민초의 미감을 서양 물감으로 드러냈다고나 할까요.”

그는 1990년 장 화백이 타계하기까지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주고받은 이야기를 정리한 책 ‘그 사람 장욱진’(김영사)을 펴냈다.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했던 장 화백이야말로 진정한 신사였습니다. 술을 매우 좋아했지만 여성이나 술을 못하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술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정 술을 한 잔 권하고 싶으면 소주잔을 엎어 잔의 굽에 몇 방울 따라주셨지요.”

장욱진의 제자인 김종학 화백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민예품 등 다양한 컬렉션을 즐기는 김 화백의 특별한 소장품이 김 교수를 자극했다.

“정조대왕의 벼루를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실물이 보고 싶어 김 화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엔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 가끔 만나게 되었지요.”

그는 김 화백을 장욱진을 닮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순진무구하고 본능에 집중하는, 자기가 하는 것, 하는 일에 ‘열’을 다하는 점에서 그렇다고 했다.

“김 화백의 설악산 겨울풍경과 소나무는 작가의 심상(진심)이 투영된 작품이지요. 늘 다음에 더 잘될 것 같다고 말하는 모습은 순수 그 자체지요.”

그는 김 화백의 작품론도 썼다. 사회과학도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소설 ‘토지’에 대해서도 사회과학도의 시각에서 풀이한 글을 썼다. 그는 역사서보다 구한말의 역사를 개인적 차원에서 대리체험할 수 있게 해 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생전에 박경리 선생이 보고 언젠가 당신의 단편 몇 편이 문학전집에 게재되는데 거기에 실릴 작가론을 부탁해 왔어요. 대문장가가 제 글 스타일을 인정하는 듯싶어 기쁘기 한량없었지요.”

그 인연으로 박경리 선생은 한 줄 시를 그에게 적어 주었다. ‘빈 들판에 비둘기 한 마리, 가을비에 젖는다’라고. 그는 가을비에 젖는 줄 모르고 비둘기가 열심히 먹이를 찾듯이 그렇게 열심히 살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한때 공직인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위의 권유로 국궁에 입문했다. 내친김에 기존의 활쏘기 책자와는 다르게 활을 문화사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 ‘활을 쏘다’(효형출판)를 펴냈다.

“활을 당기고 있을 때 과녁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은 사라지고 바로 이 순간만을 강하게 느끼게 되지요. 선불교의 무심(無心)의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동적인 명상인 셈이지요.”

그는 이 지점에서 충무공의 리더십을 거론한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과 활쏘기 놀이를 즐겼습니다. 놀이의 순간엔 활을 가장 잘 쏘는 이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웅이 됩니다. 이를 통해 상하가 허물이 없어지면서 동락(同樂)이 되지요. 동락이 이루어지면 함께 어려움을 감수하는 동고(同苦)도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충무공의 연전연승에는 동고동락하려는 부하들의 죽음을 무릅쓴 충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그는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도 동락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선택의 자유와 더불어 선택의 대가도 감수하는 자세를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교직의 영예를 누리는 대신, 돈벌이 생심은 진작 버렸다. 

“‘좋은 것은 다 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인 거지요. 명궁은 50발 중 한 발을 일부러 과녁에서 멀리 허공에 쏘지요. 모든 것은 다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경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한동안 다니던 골동가계 순례도 발길을 끊었다. ‘물건을 좋아하면 뜻을 잃는다’는 완물상지(玩物喪志)란 옛말이, 그리고 ‘그칠 줄을 알아야 만족할 줄 안다’는 노자의 경구가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권력재편 과정에서 공신들 간에 공 다툼이 벌어지면서 종종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를 잡은 사냥개가 죽임을 당한다)’이란 사자성어가 회자하기도 한다.

“토사구팽에 대구되는 말에 ‘조진궁장(鳥盡弓藏·새를 모조리 쓸어 잡고 나면 활을 접는다)’이란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활을 접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죠.”

그는 연주회장이나 전시장, 작가의 작업실을 이따금 찾는다. 비교적 혼자만의 홀가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도 마찬가지다. 

“한일양지(閑日養志), 곧 한가한 시간 속에서라야 뜻을 키울 수 있다는 옛말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세상을 나온 보람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누려보는 것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인간, 즉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보려는 것이지요.”

전병현 작가의 작품 앞에 선 그의 모습이 동자승처럼 해맑다. 활을 과녁에 명중시킨 궁사의 표정이다.

편완식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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