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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만찬'에 초대합니다"···전병현 개인전  

소설가 태기수 "한지의 '만찬'에 초대합니다"···전병현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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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가나아트, 전병현, Appear-Red Line, 2017, Collage, mixed media, 115x157cm
【서울=뉴시스】 태기수 소설가 = 6월 23일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전병현이 준비한 특별 만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호스트는 전병현,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이 요상한 만찬의 내력을 맛있게 들려줄 이야기꾼입니다. 그래요, 이 전시회는 말이죠, 깊고 웅숭깊은 만찬의 내력을 품고 있답니다. 그림으로 즐기는 만찬, 스토리가 있는 만찬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애피타이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곤혹스러워하는 당신의 표정이 보이네요. 당연한 반응입니다. 무슨 이런 그림이 있나 싶기도 하겠지요. 두텁게 발린 한지를 찢어발긴 그림들이 전시장 가득 펼쳐져 있으니 말입니다. 천진한 아이의 장난질이나 예술적인 농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림은 그리는 것’이라는 상식적 개념을 뒤엎어버린, ‘그림 아닌 그림’들이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다고 “상식적 개념을 전복한 혁신적 발상”이라거나 “실험적 기법으로 새로운 표현영역을 개척했다”는 투의 식상한 레토릭으로 당신을 현혹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림의 맛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건 오로지 당신의 몫이니까요. 

자, 당신을 위해 준비한 애피타이저가 있습니다. 아마도 전시장 입구쯤에 전통한지의 질감을 직접 느껴보 시라고 안내하는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을 거예요. 애피타이저를 즐기듯, 조각조각 찢긴 채 너풀거리는 한지의 질감을 음미해볼까요. 전병현의 작업 기법을 흉내 내듯 맘껏 찢어발겨도 좋습니다. 그러라고 내놓은 먹잇감 이니까요.

 어떤 느낌이 드세요? 다른 종이를 만질 때와는 다른, 풍성한 섬유질의 질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걸 찢을 때는 당신의 영혼에 미세한 전율이 스몄을 겁니다. 사실 그건 위험한, 파괴의 쾌감이랍니다. 파괴의 쾌감은 창조의 쾌감 못지않게 강렬하지 않던가요. 분명 전병현도 작업과정에서 그 쾌감을 내심 즐겼을 거라고 봅니다. 

이번 전시회는 ‘찢어발김’의 도발적 발상으로 차려낸 상상의 만찬이기 때문이죠. 도발은 파괴의 충동과 맞물려 있고, 창조적 도발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참신한 예술의 경지를 열어젖히는 최대출력 엔진과도 같습니다. 요컨대,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에는 전병현의 도발적 충동과 야심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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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가나아트, 전병현, Appear-Blossom, 2017, Collage, mixed media, 197x261cm
한지의 질감과 함께 도발적 에너지까지 몸소 체험했다면 당신은 이제 만찬의 주무대로 입장할 준비를 마친 셈입니다. 그 전에, 우리 전통한지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년을 간다고 해서 ‘천년한지’라 불리기도 하는 종이죠. 그렇습니다. 당신이 방금 전에 만져본 종이는 천년의 생명력을 품고 있어요. 그 질긴 생명력의 비밀을 증언하듯 말해주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답니다. 

종이는 중국 후한시대 채륜의 발명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종이를 더 우수한 재질로 개발해온 것은 우리 장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닥나무 껍질의 질긴 섬유질에서 천년의 숨결을 뽑아내는 비법을 터득했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오래가는 전통한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한지는 단순한 물질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우리 선조의 정신과 기술이 집약되어 있어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중략)

이 만찬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얘기가 길어진 것 같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인 만찬으로 들어가 볼까요. 

◇메인 코스 

 안으로 한두 걸음 들어가 전시장 전체를 둘러봅시다. 대형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지요? 뭔가 압도적인 기분도 들 겁니다. 괜찮습니다. 한 점 한 점 감상하다 보면 곧 만찬 같은 그림들의 분위기에 편안하게 젖어들게 될 테니까요. 

당신은 그림을 감상할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시나요? 전병현의 전시에서는 색(色)을 주의 깊게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는 “오로지 색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림에서 확인되는 전병현의 색, 어떤 느낌인가요? 예, 맞아요. 당신의 느낌처럼, 그다지 ‘컬러풀’하진 않죠. 아무래도 유화의 원색적인 그림들에 비해 감도가 덜합니다. 전병현이 말하는 색은 유화처럼 밖으로 표출되는 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색은 한지의 섬유질에 스며든 색입니다. 그림 속 오브제에 동화된 색이지요. “입히는 색이 아니라 벗기는 색”이라고 말하는 평자들도 있더군요. 꽤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말하자면 전병현의 색은 수묵화의 전통에서 길어 올린 색입니다. 붓으로 획을 가하면 한지에 먹물이 스미지요. 한지는 먹물을 머금고 먹빛 숨결 속에서 은근한 색감을 내비칩니다. 한지에 스민 채 살아 숨 쉬는 색이지요. 스며든 색, 숨어 있는 색입니다. 그러니까 전병현은 숨어있는 색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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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싹공(朔O)’ 전병현 작가가 신작 'Appearing Series'를 가나아트센터에서 23일 공개한다.

이번 작업도 그런 작업의도가 새로운 기법으로 표출된 결과물입니다. 숨어 있는 색을 꺼내 보여주는 작업, 얼마나 힘든 과정이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전병현은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찢어발김’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예, 당신이 보고 있는 그 색감, 전병현이 가시화한 숨어 있는 색의 정체입니다. 그 색을 표현하기 위해 전병현은 창조와 파괴의 과정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찢어발김’은 창조와 파괴가 하나로 어우러진 정점입니다. 찢는 행위 끝에 비로소 완성된 그림이니까요. 

(중략···) 당신이 보고 있는 그림들은 평균 6번의 배접을 거쳤다고 보시면 됩니다. 6겹의 옷을 입고, 6겹으로 스며든 그림이지요. 

울긋불긋, 숨어있던 색이 찢긴 종잇조각에 묻어나옵니다. 그 색을 보세요. 어딘가 친숙하고 편안한 자연미가 느껴지지 않나요? 자연의 소재에 깊이 스며든 색입니다. 전병현은 자연의 소재로, 자연미와 어울린 우리의 감성을 표현해온 작가이기도 합니다.  (···중략)

'만찬'은 전병현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함께 예술적 실천의지가 거대하게 드러난 작품입니다. 제가 아는 전병현은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나눔을 실천하며,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지향합니다. 전병현 하면 떠오르는 ‘싹공일기’에도 그러한 삶의 지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전속작가 선택의 기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더군요. “내가 택한 방법은 나와 함께 살아갈 작가를 만나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전시회를 성사시킨 것도 이호재 회장이었답니다. 

그는 “안 팔려도 좋다. 한 번 해보자. 대중에게 이런 작품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지 않겠나?”라며 전병현을 부추겼고, 그거야말로 전병현도 원하던 바였으므로 기꺼이 응했을 겁니다. 찢어발김의 미학적 도발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지요. 

◇디저트

이번 전시를 통해 전병현은 전통한지의 새로운 표현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 천년한지의 새로운 천년을 열어가고자 하는 그의 야심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세계에 공감한 당신, 당신, 당신들의 관심과 기대, 후원이 뒤따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요. 당신을 이 특별한 만찬에 초대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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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가나아트, 전병현, Appear-Banquet, 2017, Collage, mixed media, 225x880cm
또 다른 당신, 당신, 당신들을 위한 초대장도, 물론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세요. 예술도 일상의 만찬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일상적 장면이 아닐까요?
(중략) 우리는 장시간 노동 속에서 끊임없이 ‘노오오력’ 하는 삶에 짓눌려 지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선 ‘만찬’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네요.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삭풍의 세월을 지나 훈풍의 새바람을 맞이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예술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지난 어둠의 근원을 파괴하고, 그 어둠에 묻혀있던 희망의 자취를 창조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하겠지요. 예술이 세상을 바꾸긴 힘들 겁니다. 하지만 세상을 덜 나쁘게 만들 순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예, 그러니까 예술이지요. 그리하여 만찬입니다. 

어쩌다보니 얘기가 옆길로 샌 것 같네요. 뭐 어떻습니까. 디저트 타임이잖아요. 

아무려나, 하루 일을 마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시민들을 전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될 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얘기를 마칠까 합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전병현 개인전 서문에 실렸다. 소설가 태기수는 '문재인의 서재'를 쓴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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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가나아트, 전병현, Appear-Fruit, 2017, Collage, mixed media, 224x160cm
◆전병현 개인전= 23일부터 7월 16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2010년 개인전 이후 7년만의 가나아트센터에서 여는 이번 전시에는 '직업 화가'로서 평생 작업에 몰두해 온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다. 작가는 안으로 스며드는 색, 즉 수묵화의 전통과 연결되는 '숨어 있는 색'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하면서 그린 그림을 손으로 찢어서 완성한 신작 'Appearing Series'등 40여점을 선보인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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