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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가슴마다 ‘꽃燈’이 켜집니다 Chon byung hyun Newspaper article  
기사입력 2003-09-03 16:33 | 최종수정 2003-09-03 16:33

◇온라인 ‘싹공일기’쓰는 화가 전병현씨

화가 전병현씨(45)의 작업실은 어수선했다. 바닥에는 그림과 액자가 뒤섞여 있었고, 책상엔 원고 뭉치가 쌓여 있었다. “아들 녀석 유치원 보내고 두어 시간 그림일기 작업하면 하루 일과는 거의 끝”이라는 그의 주장과 달리 무척 바쁜 모양이었다. 어수선해 보이는 건 순전히 ‘싹공일기’ 때문이었다. 싹공일기는 전씨가 3년 동안 매일 홈페이지(arttnt.com)에 일기 식으로 연재한 그림과 에세이. 최근 그는 이 일기를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하며, 그림일기 중 25점을 전시하는 ‘싹공일기전’도 함께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본에 다녀오느라 일기를 며칠 못 올렸더니 ‘싹공을 못 읽어서 허전하다’ ‘도대체 어디 갔느냐’는 항의 메일이 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용수철’이라는 제목의 일기를 얼른 올렸지요”

1982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다음해에 우수상을 거머쥐며 화제를 일으켰던 작가 전병현. 그는 오랫동안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술이 문학을 만나면’이라는 동호회를 만드는가 하면, 미술·문학·연극 등의 공연을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문화이벤트 집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엄숙한 미술 대신 대중과 함께하는 미술을 택한 이유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기 위해서다.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 전씨는 한 후원자 덕분에 프랑스의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몇몇 후원자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전씨. 수많은 전시회를 열면서 실력을 다지는 한편, 많은 사람이 쉽게 그림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늘 고민했다.

생각 끝에 그가 택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차면 이지러지는 달의 의미를 담아 초하루 ‘삭(朔)’과 숫자의 처음인 ‘0’을 어우른 ‘싹공’을 이름으로 삼았다. 그래서 ‘늘 처음처럼’이라는 의미를 담은 ‘싹공일기’는 2001년 2월 문을 열었다. 각박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한 조각 여유를 주는 따뜻한 소재를 채택해 일기를 올렸다. 가족들이 둥글게 모여앉아 보름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려넣고, 다음과 같은 짧은 에세이를 덧붙이는 식이다.

‘혼자 자취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창가를 서성거리며 달을 보았지요. 달이 점점 커져 맷방석만해지면 덩달아 그리움도 커져버리곤 했습니다. 그때부턴가 가족이 생기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 달을 보는 것이었답니다. 올 추석에는 꼭 달을 보고 싶습니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멋진 그림에 따뜻한 글귀를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났다. 그의 일기장 그림 아래로 회원들의 ‘리플’ 릴레이가 이어졌다. 지금까지 입소문만 듣고 그의 ‘온라인 화랑’에 찾아든 회원만 무려 4,300여명. ‘스토커’를 자처하는 골수 팬도 500여명에 달한다.

회원들의 격려에 힘입어 일찌감치 문을 열어놓았던 ‘싹공클럽’도 활기를 띠어가고 있다. 싹공클럽은 전씨가 마련한 또 하나의 대중미술 운동단체. 문학·소설·출판계 인사 20여명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5년 전부터는 경남 하동 쌍계사 인근에서 대중미술 캠프를 열고 있다. 최근 클럽 회원들은 사람들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예술을 위해 시화전이나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는 폐교 임대까지 준비하고 있다.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었다는 전씨. 그것은 대중 곁으로 다가가 지친 사람들의 가슴에 따뜻한 위로가 되는 예술을 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은 사랑의 기억이 더 큰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문화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열심히 뛰어온 것은 제가 받았던 사랑을 고스란히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제가 뿌려놓은 사랑의 씨앗은 점점 더 널리 퍼져가겠지요. 그 갈망으로 붓을 들고 있습니다. 매일 처음처럼요”

인터넷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전씨의 작품 중 일부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편도나무에 전시된다. (02)3210-0016

〈글 김정선·사진 정지윤기자 kjs0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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