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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서 전시회 열고 있는 전병현Chon byung hyun Newspaper article  

화면가득 여백이…그 속을 거닐고 싶다


◇전병현 작가는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는 루마니아 조각가 브랑쿠시의 말을 가장 좋아한다. 신처럼 생각하고 작업을 즐기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꽃들이 만개하고 들판의 잡초들이 흐드러져 있다. 파도가 넘실거리기도 한다. 화면 전체엔 조선 백자의 유백색이 감돈다. 달빛을 뿌려 놓은 듯한 색채다. 차라리 여백을 뿌려 놓았다는 표현이 옳을 듯싶다.

부산 해운대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4층 전시장. 이곳에서 오는 27일까지 전시를 열고 있는 전병현(51) 작가를 만났다.

“친구들이 묻더군요. 화면 속에 색들이 어딘가 모르게 비어 있지 않냐고요. 그래서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자네나 나나 그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많다고 말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그의 그림엔 부쩍 흰색 톤이 강해지고 있다. 생각이 잠기게 만드는 여백의 미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잡다한 생각들을 잠시 접고 그 속을 거닐게 하고 싶습니다. 화면 전체에 여백의 미를 풀어헤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만의 작업 방식이 이를 가능케 해주고 있다. 한지장인 류운영옹에게서 지원받은 닥나무 원료(닥죽)가 기본 재료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석고판을 뜨고, 거기에 닥죽을 올린 후 딱딱하게 굳으면 그것을 캔버스에 콜라주한다. 그 위에 황토를 바르고 마르면 대리석 가루를 입힌다. 작업 과정이 수공의 인내를 요구한다. 돌가루가 마르기 전에 먹, 수용성 안료, 목탄을 이용해 형태를 구체화한다.

황토를 칠하는 것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배채 기법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리석 가루는 백자의 유백색을 나타나는 데 제격이다. 마지막 목탄 작업은 고려불화의 기법이기도 하다.

“전통 재료를 연구한다는 차원도 있지만 궁극적 목표는 제게 궁합이 맞는 재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는 “1980년대 파리 유학 시절에 배운 것은 서양화의 기술적인 테크닉이고, 느낀 것은 그림의 원천적인 힘이 되는 동양적인 정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에선 동시대 미술 언어와 전통의 정신, 서양적 마티에르의 표현, 동양적 여백과 사색의 미가 공존한다. 닥죽이 연출하는 마티에르와 소박한 미감이 인상적이다.

그림 속엔 춘하추동이 다 녹아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은근히 은유하고 있지만 ‘찬란한 받아들임’이다. 달빛 부서지는 밤 홀로 자신과 대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신을 전하는 동양화의 전신(傳神)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전병현 작가는 달항아리 시리즈로 국내 미술시장을 달구기도 했다. 내년 초엔 뉴욕 첼시에서 조선시대 초상화 기법을 나름의 화법으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부산 전시작품들도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시장이 소강 국면에 들어섰는데도 컬렉터들이 작품성과 잠재력을 가진 작가에겐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 너머로 파도가 밀려 온다. 그 파도가 그림이 되어 전시장에도 걸렸다. 파도 옆에 파도 그림이라. 작가의 자신감과 파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051)744-2020

편완식 문화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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